폰으로 해석한다는 무모한 생각
계산기의 계보
공학 계산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를 따라가 보면, 기계는 계속 작아졌다.
처음에는 건물만 한 컴퓨터였다. 계산을 하려면 그 방에 찾아가야 했다. 다음은 워크스테이션이었다. 연구실 한구석에 놓인 비싼 기계 앞에 순서대로 줄을 섰다. 그다음이 개인용 컴퓨터였고, 지금은 노트북에서 웬만한 해석이 돌아간다.
방 → 연구실 → 책상 → 무릎 위.
그러면 다음은 어디인가. 주머니다.
이 흐름만 놓고 보면 휴대폰에서 해석을 돌리자는 발상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유가 있다.
폰은 해석에 최악의 기계다
냉정하게 보면 휴대폰은 수치해석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유를 하나씩 세어보면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근거가 더 많다.
메모리가 작다. 해석은 격자의 모든 지점에 대한 값을 동시에 들고 있어야 한다. 100만 개 지점이면 100만 개의 숫자를 메모리에 올려두고, 계산 과정에서 그 두세 배를 더 쓴다. 데스크톱에서는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휴대폰에서는 앱이 강제 종료되는 이유가 된다.
전력에 제약이 있다. 노트북은 전원에 꽂아두고 몇 시간이든 계산을 돌릴 수 있다. 휴대폰은 몇 분만 전력을 몰아 써도 뜨거워지고, 뜨거워지면 운영체제가 성능을 스스로 낮춘다. 계산을 오래 돌릴수록 느려지는 기계인 셈이다.
화면이 작다. 해석 결과는 대개 그림으로 본다. 온도 분포, 응력 분포, 유동장. 27인치 모니터에서 보던 것을 6인치에 담으면 정보가 사라진다.
입력이 불편하다. 좌표를 찍고, 재료를 고르고, 경계조건을 지정하는 일은 마우스와 키보드에 최적화된 작업이다. 손가락으로 하기에 좋은 일이 아니다.
이 넷 중 앞의 둘은 기술이 해결해 줄 여지가 있다. 칩은 계속 빨라지고 있고, 문제 크기를 줄이면 메모리도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뒤의 둘이다. 화면과 입력은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과 기계 사이의 문제라서, 칩이 빨라져도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럼에도 폰을 고집한 이유는 성능 때문이 아니었다. 거리 때문이었다.
앞 편에서 이야기한 구조를 다시 떠올려보자.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계산을 하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고, 그 사이의 왕복에 며칠이 걸린다. 그래서 사소한 궁금증은 질문조차 되지 못한다.
이 거리를 만드는 것은 계산 속도가 아니다. 접근성이다.
해석을 하려면 전용 소프트웨어가 깔린 특정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고, 그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라이선스가 있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이 모두 갖춰지는 순간은 하루에 몇 번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궁금증은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잊힌다.
반면 휴대폰은 언제나 손에 있다. 회의 중에도, 현장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가.” 우리가 붙잡은 질문은 이것 하나였다.
크기를 바꾸면 종류가 바뀐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하나 있다. 기계가 작아지면 같은 일을 작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카메라가 그랬다. 필름 카메라 시절 사진은 특별한 날의 기록이었다. 필름값과 현상비가 들었고, 한 컷을 신중하게 찍었다. 휴대폰에 카메라가 들어오면서 사진은 다른 것이 되었다. 주차한 자리를 찍고, 영수증을 찍고, 냉장고 안을 찍는다. 기록이 아니라 메모가 되었다.
해석도 같은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봤다.
지금의 해석은 필름 사진에 가깝다. 비싸고, 신중하게 준비하고, 한 번에 제대로 뽑아야 한다. 그래서 확신이 있을 때만 돌린다.
우리가 원한 것은 메모 같은 해석이다. 정밀하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당장 대략의 답을 주는 것. “이 방향이 맞나?”를 30초 만에 확인하고, 아니면 버리는 것.
정밀한 답 하나보다, 빠른 답 열 개가 설계를 더 멀리 데려간다.
그러니 폰에서 돌리겠다는 결정은 성능 경쟁이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해석을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래서 진짜 문제가 드러났다
목표를 이렇게 잡고 나니, 앞에서 세었던 네 가지 약점의 무게가 달라졌다.
메모리와 전력은 문제를 작게 잡으면 된다. 처음부터 2차원, 단순 형상, 제한된 물리 현상만 다루기로 하면 감당할 수 있다. 정밀함을 포기하기로 했으니 이건 타협 가능한 손실이다.
화면도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30초 만에 방향만 확인하는 용도라면 필요한 것은 정교한 3차원 시각화가 아니라 “뜨거운가 아닌가” 수준의 판단이다. 그건 작은 화면으로도 충분하다.
남은 것은 입력이었다. 그리고 이게 진짜 벽이었다.
해석 조건을 지정하는 일은 항목이 많다. 형상, 치수, 재료, 물성값, 경계조건, 초기조건, 시간 범위, 격자 크기. 데스크톱 프로그램은 이걸 수십 개의 입력창과 드롭다운으로 받는다. 그 화면을 휴대폰에 그대로 옮기면 아무도 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버튼을 줄이고 화면을 다시 그리는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입력 방식 자체를 바꿔야 했다.
그런데 사람이 물리 문제를 설명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이미 존재한다. 앞 편 마지막에 적었던 그것이다.
“알루미늄 팬인데 손잡이는 플라스틱이고, 바닥에서 200도로 가열될 때 손잡이 끝이 몇 도까지 오르는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입력창을 채우는 게 아니라, 문장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문장을 그대로 받으면 되지 않을까. 화면에 입력창 대신 텍스트 상자 하나만 두고.
말은 쉽다. 저 한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는지 알기 전까지는.
다음 편 예고 — 질문하는 사람과 계산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 왜 설계자가 직접 해석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그 분업이 언제 어떻게 굳어졌는지 따라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