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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수치해석/4부 AI로 넓히기

왜 AI인가 — 반복이 만드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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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3 · 읽는 데 9분

4부를 시작하며

3부에서 전통적인 수치 계산을 다뤘다. 격자를 자르고 반복해서 풀고 검증하는 과정.

4부는 거기에 AI를 결합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순서를 분명히 해두고 싶다. AI가 앞에 오지 않는다.

요즘 어떤 문제든 AI를 먼저 꺼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반대로 갔다. 먼저 검증 가능한 전통 계산을 만들고, 그것이 돌아간 뒤에 AI를 얹는다.

이유는 20편에서 다룬 검증 문제다. AI는 검증이 훨씬 어렵다. 검증할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AI부터 쓰면,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이 부의 이야기는 “AI로 대체한다”가 아니라 “검증된 계산 위에 얹는다”다.

반복이 만드는 특수한 조건

그럼 왜 AI가 필요한가. 성능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사용 방식 자체가 특수한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3편에서 목표를 세웠다. 열 번 시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15편에서 실제 사용 모습을 봤다.

  • 플라스틱 대신 나무면?
  • 손잡이를 3cm 길게 하면?
  • 연결부 면적을 절반으로?
  • 스테인리스 팬이면?

여기서 중요한 관찰이 있다. 이 열 번의 계산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

형상이 거의 같고, 물리 현상이 같고, 경계조건의 구조가 같다. 달라지는 것은 몇 개의 숫자뿐이다.

전통적인 계산은 이 유사성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 매번 처음부터 격자를 훑으며 수천 번 반복한다. 아홉 번째 계산이 첫 번째 계산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게 낭비다. 그리고 그 낭비가 AI의 기회다.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푼다는 것

여기서 관점을 하나 바꿔 보자.

전통적인 해석은 “이 조건에서 답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조건이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묻는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알고 싶은 것은 다른 형태다. “조건이 이렇게 바뀌면 답은 어떻게 바뀌는가.”

이건 하나의 답이 아니라 조건에서 답으로 가는 관계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를 배우는 것은 기계학습이 잘하는 일이다. 수많은 (조건, 답) 짝을 보고 그 사이의 규칙을 파악하는 것.

그러니 AI가 대체하려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매번 처음부터 계산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어디서 오나

기계학습에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 하나 있다.

일반적인 기계학습에서 데이터는 비싸다. 의료 영상에 병변을 표시하려면 의사가 필요하고, 번역 데이터를 만들려면 번역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데이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전통적인 솔버를 돌리면 (조건, 답) 짝이 하나 생긴다. 조건을 바꿔가며 수만 번 돌리면 수만 개의 짝이 생긴다. 정답이 붙은 데이터를 컴퓨터가 무한히 생성할 수 있다.

이건 대단한 이점이다. 그리고 이 이점이 성립하는 이유는 답이 물리 법칙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

(참고로 NumTerra는 이 지점에서 정반대의 상황에 있다. 그쪽은 정답을 만들 수 없고 사람의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 같은 사람이 두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대조가 계속 눈에 띈다.)

실사용 데이터도 쌓인다

여기에 두 번째 원천이 있다. 9편의 사업계획에서 “사용자 데이터를 자산으로 축적한다”고 한 부분이다.

사용자들이 실제로 어떤 조건을 넣는지가 데이터가 된다. 이게 왜 중요한가.

가능한 조건의 공간은 무한히 넓지만, 실제로 쓰이는 영역은 좁다.

프라이팬 두께가 0.1mm부터 100mm까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사용자가 넣는 값은 3~8mm에 몰려 있다. 재료도 몇 가지에 집중된다.

그러면 학습을 실제 쓰이는 영역에 집중할 수 있다. 넓은 공간을 고르게 학습하려 애쓰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묻는 영역에서 정확해지는 것이다.

이건 실용적으로 큰 차이다. 좁은 영역에서 정확한 모델이 넓은 영역에서 대충인 모델보다 훨씬 쓸모 있다.

무엇을 학습하나 — 세 가지 층위

AI를 얹을 수 있는 자리가 여러 곳이다. 성격이 다르므로 구분해야 한다.

① 번역층 — 자연어를 DSL로 옮기는 일. 12편에서 이미 다뤘다. 여기서는 AI가 언어를 다룬다. 계산과 무관하다.

② 초기 추정 — 반복 계산의 출발점을 잘 잡아주는 일. 15편에서 모든 점을 25도로 놓고 시작했다. 만약 시작점이 답에 가까우면 반복 횟수가 크게 줄어든다.

이 방식의 좋은 점은 틀려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초기 추정이 나빠도 반복 계산이 결국 옳은 답으로 수렴한다. 느려질 뿐이다. AI의 오류가 답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③ 답 자체를 예측 — 계산을 건너뛰고 결과를 바로 내놓는 일. 가장 빠르고 가장 위험하다. 24편의 FNO가 이 방향이다.

세 층위의 성격을 정리하면 이렇다.

층위 얻는 것 위험
① 번역 사용 편의 조건이 틀릴 수 있음 (12편에서 DSL 표시로 대응)
② 초기 추정 속도 거의 없음 — 결국 수렴함
③ 답 예측 큰 속도 답이 틀릴 수 있음

우리는 ②를 먼저, ③을 조심스럽게 도입한다. ②는 검증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속도를 얻는다. 공짜에 가까운 개선이다.

③은 다르다. 20편에서 만든 검증 체계가 통째로 흔들린다. 격자 수렴 검사도, 에너지 보존 검사도, 예측된 답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별도의 신뢰 장치가 필요하고, 그게 26편의 주제다.

이 부의 순서

4부를 이렇게 진행한다.

  • 22편 — 물리 법칙을 학습에 넣는 방법 (PINN)
  • 23편 — 왜 푸리에가 등장하는가
  • 24편 — 답이 아니라 연산자를 배운다 (FNO)
  • 25편 — 데이터가 자산이 되는 구조
  • 26편 — 틀린 답을 걸러내는 설계
  • 27편 — 단계적 확장 로드맵

22편과 24편이 기술의 중심이고, 26편이 가장 중요하다. 빠른 답을 얻는 방법보다, 그 답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른다.


다음 편 예고 — PINN: 물리 법칙을 손실함수에 넣기. 데이터만으로 배우는 것과, 물리를 함께 가르치는 것의 차이.